크리스티나 유나 고
1. 레이오버에 오기 직전 3개월의 생활이 궁금해요.
레이오버에 오기 전에 Asian Feminist Studio for Art and Research(AFSAR)의 Mooni Perry 와 Sun Park과 함께 홍콩과 중국 남부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Mooni Perry의 CHAT 미술관 레지던시의 일환이었습니다. 우리는 1900년대 초 중국 남부에서 결혼을 요구받던 시대에 혼인을 택하지 않고 서로와 함께 살기로 선택한 여성 공동체인 채구(菜姑)와 빗자매(梳女)들이 모셨던 여성 신들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홍콩, Chaozhou (조주), 광동에서 천후(마조), 관음, 그리고 칠선녀(칠자매)를 모신 사당을 방문했고, 빗자매 공동체의 집도 찾아갔습니다. 마침 저희가 홍콩에 머물던 시기가 귀신달(중원절)이어서, 여러 지역에서 열리는 지옥문 개문 의례 등 관련 의식에도 참여했습니다. 음력 7월 7일 칠선녀의 생일을 함께 기념한 뒤, 귀신달의 마지막 날에는 저희만의 여신들을 위한 의례도 진행했습니다.
2. 레이오버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의 첫번째 일정은 무엇인가요?
레이오버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가장 먼저 하기로 결정한 일은, 무속신앙·무속의례에서 사용되는 종이 오리기 양식인 설위설경을 연구하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제주에서 진행하던 연구의 흐름과 속도를 지속하고자 이러한 일정을 결정했습니다. 제주에서는 제주 지역 특유의 무속 종이오리기인 기메를 전문적으로 하시는 무속인을 만나 뵙지 못해서, 서울에서는 혹시 뵐 수 있는 분이 있을까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3. 제주도를 방문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요?
저는 제주의 토속 신앙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강건 작가님의 사진집『소박한 성소』에 실린 에세이를 읽은 후,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무속 의례들이 왜 육지보다 제주가 더 활발한지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주도 만의 무속신앙이 어떤 형태로 남아있는지에 깊은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제 성이 고(高)이기도 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제 성의 기원지에 대한 호기심이 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자라 조상에 대한 감각이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을 오래 받아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4. 처음 방문한 제주는 어떤 인상으로 남았나요?
풍경이 정말 강렬했습니다. 곳곳에 바다, 산, 짙은 돌, 푸른 식생, 어디에 있든 그 풍경이 제 기억 속에 깊이 새겨졌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곳은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제주는 영적인 기운이 땅 자체에 스며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제주에 머무는 동안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떠난 뒤에도 계속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5. 레이오버에서의 일과는 어땠나요?
저는 매일 어딘가를 가보려고 했습니다. 본향당, 절, 도서관 등등. 제주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매일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고 싶었습니다. 운전을 할 수 없어서 대중교통에 의존해야 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제주에서 보내는 시간에 고유한 리듬이 만들어졌습니다. 하루에 많아야 두 곳 정도만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그 다음 날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하고, 낮 동안에는 그 장소를 방문하는 식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
특히 도서관이 정말 좋았습니다. 제주 신화와 제주 토속신앙에 대한 자료가 풍부했는데, 제주에 오기 전까지는 제가 전혀 몰랐던 세계였기 때문입니다.
6. 바다 가까이에서 지내본 적이 있나요?
저는 바다와 이렇게 가까이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파도 소리와 바다를 보며 잠들고 깨어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홍콩과 중국 남부에서는 바다를 지키는 여신인 마조(媽祖)를 모신 사당들을 여러 곳 방문했기 때문에, 제주에서 이렇게 물 가까이에 머무는 일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습니다.
7. 레이오버 기간동안 무엇을 가장 맛있게 먹었나요?
(salt) 팀과 함께 먹었던 각재기국과 멜튀김 정말 맛있었어요! 제주에 다시 가게 되면 꼭 다시 먹으러 갈 거예요. 그리고 하나로마트에서 사 먹은 매생이두부도 너무 좋았어요!
8. 이번에 리서치 하러 방문한 장소들 중 인상깊었던 곳이 있나요?
아마도 (salt) 팀과 함께 방문한 불공 할망당, 넋산 본향당이 기억에 남아요. 특히 고씨 삼승할망의 묘소가 본향당으로 모셔져 있는 곳이 인상에 깊게 남았습니다. 그날은 아주 맑고 화창한 날이었는데, 신당 주변만 유독 그늘진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본향당으로 내려가는 순간 실뱀도 보았고요. 그곳을 떠날 때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함께 있었던 다른 분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곳의 공기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안내판에는 고씨 할망이 치유자였으며, 그녀에게 기도하면 병을 낫게 해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장소의 분위기를 느끼다 보니, 그녀의 삶과 성품에 대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주변에는 꽃병과 조화 등 제사의 흔적도 보였는데, 지금도 고씨할망을 적극적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9. 평소에 미루고 있는 일이 있나요? 몇 년 동안 생각만 하고 있는…
네, 제가 계속 작업하고 있는 ‘귀여움’에 관한 책이 있는데 출판을 계속 미루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일정이 밀리기 시작했고, 졸업 후 여행을 떠나기 전 여름에 마무리하려 했지만 작업실을 옮겨야 해서 또 미뤄졌습니다. 여행 중에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막상 현지에 가보니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었고, 눈앞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들을 최대한 흡수하는 데 에너지를 쓰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저는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 그래서 뉴욕에 돌아와 지금은 이 책을 정말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전념하고 있습니다.
10. 레이오버 기간 동안 ‘경유지’에 대한 정의나 생각이 달라졌나요?
어디에 있든, 경유지에 있을 때도, 그곳은 단순한 ‘중간’이 아니라 하나의 고유한 장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가 머무는 곳에 시간을 온전히 쏟고 싶습니다. 그래서 레이오버 동안에도 매일 밖으로 나가 최대한 많이 보고 경험하려고 했습니다. 경유지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길목일 수도 있지만, 그 ‘사이’의 공간 자체가 다양한 가능성으로 가득한 또 하나의 장소라고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