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1. 레이오버에 오기 직전 3개월의 생활이 궁금해요.
레이오버 직전 3개월 동안은 디지털 미술 아카이브 관련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고 연구 제안 단계를 진행했어요. 또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아트 아키비스트’라는 직업에 대한 10주차 강의를 맡기도 했고요. 이외에도 디자인박물관, 광주비엔날레 등 미술 분야에서 아카이브 구축을 추진하는 기관들에 자문, 평가, 심의 등을 했죠. 이렇게 학업과 일을 병행하면서 가끔 피곤하기도 했지만 6월이 되면 제주에서 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상반기를 열심히 보낸 것 같아요.
2. 레이오버에서의 일과는 어땠나요?
레이오버를 하면서 일주일 동안, (salt) 앞에 펼쳐진 바다 풍경이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마음이 들떠서 매일 새벽 4-5시쯤이면 저절로 눈이 떠졌어요. 그때마다 ‘이곳이 대체 어딘가?,나는 누구인가?, 꿈인가?, 현실인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그런 잡생각 이후에는 아름다운 해변가를 걸으며 러닝을 했고 그 시간 만큼은 온전히 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오후가 되면, 서울에서 미처 떨구지 못한 일도 처리하고 (salt) 식구들과 일상을 공유하기도 했고요. 주말이 되면, 서울에서 제 지인들이 하나둘씩 찾아왔고 그때마다 그들과 제주도 여행을 했죠.
3. 레이오버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의 첫 번째 일정은 무엇이었나요?
안타깝게도 가족의 임종을 지켜보고 상을 치뤘어요. 물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레이오버 끝나고 바로 있던 일이라 너무 당황했고 가슴이 아팠어요. 도덕책 같은 말이지만, 정말 가족 존재의 이유와 다시 한번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죠.
4. 레이오버를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오라동메밀밭에 갔을 때였어요. 계절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청보리든, 메밀꽃이든 뭐든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역시나 그냥 드넓은 녹색의 산책길이 저를 맞이했죠.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뒤에는 한라산, 앞에는 바다와 녹색의 자연 정원이 있었죠.
5. 레이오버 기간 동안 무엇을 가장 맛있게 먹었나요?
매일 식사 하나하나가 최고를 갱신이라서 뭐가 가장 맛있었다고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어요(웃음). 레이오버에 머무는 동안 정말 모든 게 다 맛있었어요. 그랬던 이유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알던 제주도의 식당들보다는 (salt)의 필드 노트를 활용해서 맛 기행을 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제 취향이나 블로거, SNS를 따르는 것이 아닌, (salt)의 취향대로 음식을 즐겨본 거죠. 그 중에서도 ‘우리는’의 커피, ‘제레미’의 커피와 토스트, ‘삼일 해장국’의 내장탕, 농협에서 파는 막창 순대와 회, ‘해변횟집’의 고등어회, 그리고 우습지만 (salt) 식구들과 먹었던 교촌 치킨, 마켓 컬리의 유린기까지요.
6. 제주도에 대한 새로운 인상이 생겼나요?
제주도는 막연히 풍경이 아름다운, 선물 같은 섬이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런데 필드노트에 나와 있는 곳을 하나씩 경험해보면서 제주도는 단지 풍경만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연과 함께 즐기며 살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게도 언젠가 제 전공을 살려 제주도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7. 평소에 미루고 있는 일이 있나요? 몇 년 동안 생각만 하고 있는...
언제부터인가 저는 일을 잘 미루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웃음). 미루지는 않았는데 내 맘대로 안되는 건 영어 회화, 다이어트 이런 거 같은데요?
8. (salt)가 제작하는 상품들에서 어떤 특별한 매력을 느끼셨나요?
(salt) 제작 상품은 손맛이 있어요. 디자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 듯하면서도 그 안에 사람의 손길이 섬세하게 담겨 있죠. 그 균형이 참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레이오버 마지막 날, (salt)에서의 기억을 박제하고 싶어서 (salt) 기념품들 중 눈여겨 봤던 기념품들을 가능한 한 빠짐없이 구입했어요. 그리고 나서 혜송님의 따뜻한 포장이 인상 깊습니다.
9. (salt) 커뮤니티의 어떤 점이 기억에 남으시나요?
(salt) 건물, 사이니지, 제작 상품, 1층의 공간과 가구, 가끔 이용한 주방과 커피머신, (salt) 식구들의 맑은 웃음과 손동작. 그냥 (salt) 자체가 기억에 남아요.
10. 레이오버 기간 동안 ‘경유지’에 대한 기존 정의나 생각이 달라졌나요?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거의 모든 것을 멈추고 3주가 넘는 시간을 이렇게 보내 본 건 처음이에요. 이번 기회를 통해 경유의 의미를 체감했어요. 그래서 제 인생의 분기점이 되는 어느 때에 다시 한번 레이오버의 기간을 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