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문
1. 레이오버에 오기 직전 3개월의 생활이 궁금해요.
작년 여름에 압화 작업을 시작하고 전시를 열었어요. 그 일이 신호탄이 되어서 압화와 관련한 여러 인터뷰를 진행하고, 국립 기관에서 작업 의뢰가 들어오기도 했어요. 그렇게 압화를 소개하고 생산하는 일을 주로 했어요. 또 저는 겨울마다 해외로 떠나 겨울 방학을 가지는데 지난 겨울에는 인도에 다녀왔어요. 돌아와서는 작업실을 이사하고 정돈하고 꾸미며 바쁜 시간을 보냈네요. 마침 레이오버가 브레이크를 걸어줘서 참 좋습니다.
2. 레이오버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레이오버 동안 (salt)에서만 머물며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주의 시간이 활발하게 꽉꽉 채워졌어요. 친구들이 놀러 오기도 하고, 솔트 팀과 함께 외출도 많이 하고요. 이전에도 제주에 정말 여러 번 왔었는데 이렇게 긴 시간을 다채롭게 보낸 건 처음이에요. 이전에는 길어야 5일 정도 머물렀어요. 국내 여행 자체를 이렇게 길게 해본 게 처음이에요.
3. 레이오버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의 첫 번째 일정은 무엇인가요?
지금 봄이라 그런지 압화 작업을 의뢰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그런 시기에 제가 자리를 비웠다 보니, 남편이 지금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어요. 그래서 가자마자 제품을 생산하고 책 작업도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전시 준비를 시작할 것 같아요.
4. 전에 제주 여행을 많이 오셨는데, 이번 레이오버 기간에 새롭게 발견한 제주의 모습이 있나요?
정말 많죠. 일단은 사람들의 손이 타지 않은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어 좋았어요. 그리고 한라산! 성판악으로 올라갔다가 관음사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어요. 이전에는 제주에 짧은 일정으로 방문했다 보니, 유명한 곳들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했어요. 숲이나 오름보다는 정돈된 조경들 위주로 많이 봤던 것 같아요. 검색에만 의존해서 다니다 보니 정보도 부족했어요. (salt)에서 제공해 주신 필드 노트 덕분에 제주를 더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어요.
5. 레이오버에서의 잠자리는 어땠나요?
너무 편안했어요.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게 정말 좋아서 처음 일주일 동안은 문을 열고 잤어요. 그리고 침구가 바스락거리는 게 참 좋았어요. 또 제가 (salt) 룸 스프레이의 향을 굉장히 좋아해서 자기 전에 침구에 뿌려두고 잤는데 그게 정말 행복했어요.
6. 레이오버에서의 아침 시간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스탭분들께서 매일 반갑게 인사해 주시고 음식 나눠주시고 일정 물어봐 주시고, 일정 없으면 같이 밥 먹고 하는 자연스러운 호스팅이 굉장히 좋았어요. 저는 (salt)에 손님으로 방문한 적이 있어요. 객실과 공용 공간만 경험했었는데, 손님에게 보이지 않는 공간까지 이렇게 정돈되어 있어 놀랐어요. (salt) 스탭분들은 모든 기물을 사용하자마자 곧장 깨끗이 청소하고 물기도 바로 제거하면서 공간의 질서와 청결을 유지하는 모습에 감명받았어요.
7. 바다 가까이에서 지내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저는 숲을 너무 좋아해서요. 집도 나무가 보이는 곳이나, 숲에서만 살았어요. 숲을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잘 몰라요. 잠깐 빛이 들었다가 금방 사라져 버리죠. 그런데 바다는 24시간 어떻게 변하는지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곁에 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새로웠습니다. 아침에 일출이 보이고 밤에는 배가 뜨고요. 그것 때문에 2주 동안 창밖을 봐도 질리지 않았아요.
8. 이전에는 (salt)에 손님으로 묵으셨는데, 레이오버로 긴 시간을 머무시니 어떠셨나요?
‘더 좋아질 수 있나, 이 정도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여행을 완성하는 건 숙소라고 생각해요. 저는 원래 공간을 찾아다니는 걸 굉장히 좋아해서, 공간 방문을 목적으로 여행했거든요. 손님으로 방문했을 때 (salt)의 비대면 체크인 시스템이 편리하다고 느꼈었는데, 스텝분들과 만나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나니 이곳이 더 좋아졌어요. 하지만 (salt)는 아늑하고 사람 체취가 묻어나는 공간이라기보다 개개인이 생각을 비워내고 정돈하는 시간을 보내기를 권장하는 공간이니 비대면 응대 방식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9. 평소에 미루고 있는 일이 있나요? 몇 년 동안 생각만 하고 있는…
저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 다 해요. 다만 계속 미루는 일은 책 쓰는 거였어요. 4년 전에 덥석 출판 계약을 했는데 그동안 다양한 책을 읽고 작가님들을 만나고 글을 접할수록 ‘나는 책을 낼 자격이 없다’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그렇게 3~4년 동안 도망만 쳤죠. 계속 도망만 치다가 원고를 마주하게 된 순간이 (salt)에서 부터였어요. 이번에 조금이라도 해치우고 가는 것 같아요. 방에서 작업하다가 갑갑하면 1층 라운지에 내려와서 하고, 스튜디오에 들어와서도 하고요. 공간을 바꿔가면서 환기가 되었어요.
10. 레이오버 기간동안 무엇을 가장 맛있게 먹었나요?
선아님, 혜송님이 만들어주신 톳 파스타랑 톳 주먹밥이요! 같이 먹어서 그런지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11. 레이오버 기간 동안 ‘경유지’에 대한 기존 정의/생각에 달라진 점이 있나요?
아 너무 달라졌죠! 제 레이오버 기간 동안 몇몇 지인들이 방문했어요. 이번에 (salt)에 체크인을 하면서 ‘나는 정거장에 왔다가 가는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지내다 보니 제가 정거장이 된 느낌이었어요. 그러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에 대한 사랑, 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고요.
12. 앞으로 진행 예정인 프로젝트가 있는지 궁금해요.
일단은 9월에 책 출간을 앞두고 있어요. 또 압화 작업은 원래 작년까지만 진행하려고 했는데, 해보니 단기간 안에 끝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더라고요. 작업을 이어갈수록 가능성이 더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압화를 더 연구해 볼 생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