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수
1. 레이오버에 오기 직전 3개월의 생활이 궁금해요.
도서를 출간하기로 계약된 여러 건 작업을 마친 뒤 나름대로의 안식월을 갖던 시기였습니다. 작업실을 친구에게 렌트를 주고, 푹 쉬면서 많이 걷고, 베를린 여행을 다녀오고, 예정되어 있던 작은 전시회를 준비하고, 또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길을 향하고 싶어 또 다른 의미의 레이오버 중인 참이었어요.
2. 레이오버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겨울 제주보다는 봄의 제주에 머물고 싶어 날씨가 풀리고 매화가 피고 목련 꽃봉오리가 맺힐 즈음인 삼월 중순경 입주를 부탁드렸습니다. 그 덕분에 보름 동안 매화, 목련, 개나리, 그리고 벚꽃까지 활짝 만발한 풍경을 보고 돌아왔네요.
3. 이전에 제주에 온 적 있는지, 있다면 무얼 하셨나요?
마지막으로 제주에 방문했던 건 칠 년 전이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몇몇 친구들과 놀러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중산간 밤하늘 아래서 별도 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왜인지 모르게 그때와 이번 방문 사이에는 제주를 거의 방문하지 않았네요.
4. 레이오버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의 첫 번째 일정은 무엇인가요?
새봄을 맞이해 옥탑 집에 딸린 작은 테라스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작업실을 정비하는 일입니다.
5. 레이오버에서의 일과는 어땠나요?
개인전 <Here or There>를 열고 베를린 여행을 다녀오느라 그동안 밀린 잠을 주로 잤습니다. 고요한 애월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요. 제주 토박이인 연인과 여기저기 다니며 맛있는 커피도 많이 마시고, 바다와 오름과 들판이 어우러진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눈에 많이 담았습니다. 애월도서관 안에 있는 바다가 보이는 야외 농구장도 종종 찾았습니다. 농구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행자 한 분과 one on one 게임을 즐기기도 했네요.
6. 레이오버에서의 아침 시간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느즈막이 일어나 라운지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넓은 유리창 너머로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책은 들고 다니기만 하고 거의 읽지 못했습니다.
7. 바다 가까이에서 지내본 적이 있나요?
돌이켜보면 바다 가까이에 살아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8. 평소에 미루고 있는 일이 있나요? 몇 년 동안 생각만 하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것을 미룹니다. 마감이 정해져 있지 않은 개인적인 일이라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미루는 편입니다. 집 대청소를 미루고 또 미루다가 안식월을 갖고 나서야 한 달에 걸쳐 겨우 해냈습니다. 남들과 비교하자면 운전면허도 굉장히 늦은 나이에 딴 것 같고요. 그리고 출판이 아닌 새로운 분야의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참 오랫동안 해왔는데, 여전히 시작을 못했습니다. 뭔가에 꽂히거나 미치거나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이제는 뭔가에 꽂히거나 미치는 게 쉽지 않네요.
9. 레이오버 기간동안 무엇을 가장 맛있게 먹었나요?
하나로마트에서 당일 만들어 판매하는 참돔초밥, 그리고 제주 막걸리를 가장 맛있게 먹었습니다.
10. 레이오버 기간 동안 ‘경유지’에 대한 기존 정의/생각에 달라진 점이 있나요?
경유지에서의 시간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경유지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 경유만 하면 되니까요. 경유지라는 시간과 공간에 갇혀 있지만, 오히려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꼭 지역이 아니더라도 어딘가로 이동하는 교통 수단 안에서 저는 대개 경유하는 기분을 느끼고, 그래서 어디로든 긴 시간 이동하는 걸 즐깁니다. 누군가는 시간을 버리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제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1. 제주도에 대한 새로운 인상이 생겼나요?
예전과는 달리 관광객이 많이 줄어 조금이나마 본래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운전을 하게 되니 제주의 풍경이 또 새롭게 보였습니다. 특히 도로에서 바라보는 중산간 지역의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레이오버 이전에는 비록 칠 년 전에 방문했었지만, 앞으로는 꽤 자주 방문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다가오는 여름에는 제주에 더 길게 머물러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