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1. 레이오버에 오기 직전 3개월의 생활이 궁금해요.
업무적으로는 운영하고 있는 제작사에서 올해 진행할 다원예술 프로젝트와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등 기획 전반의 구상을 했고 개인적으로는 차에 대해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관련 대학 입학을 준비하며 지냈어요.
2. 레이오버 일정은 어떤 식으로 조율하고 결정하셨나요?
몇 해 전, 임흥순 작가님과 차 작업자로 협업하며 제주 4.3을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요. 마침 사월의 제주는 처음이라 사실 더 뜻깊고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를 맞추어 일정을 조율하였어요.
3. 이전에 제주에 온 적 있는지, 있다면 주로 무얼 하셨나요?
일년에 한번은 제주에 오는 것 같아요. 일단 공항 도착하면 제일 먼저 저의 주치 한의원장님이 계신 한의원으로 가서 검사를 하고 침부터 맞습니다. 하하. 거기에 일련의 저의 몸에 대한 데이터가 있어서 현재 상태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해요. 그리고 주로 금능 해변의 한적한 장소에서 이른 아침 저녁으로 남편은 요가하고 저는 돗자리 펴고 차 마시고 해안가를 걷고 제주의 식물을 관찰하고 채집하기도 하고요. 무리하지 않고 자연을 만끽하며 쉬러 오는 곳이예요. 매번 제주의 자연에 정말 큰 에너지를 받아서 지칠 때면 더 이끌리는 것 같아요.
4. 레이오버에서의 일과는 어땠나요?
아침 일찍 일어나는 편인데요. 눈을 뜨면 하얀 방 창문 너머 푸른 바다빛과 파도 소리 바다 내음으로 황홀하게 아침을 맞이하고 고요한 솔트의 라운지에서 역시 바다를 마주하고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시작했어요. 밤에는 밤바다를 배경으로 이층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요.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고요. 꿈이였나 싶습니다. 사실 머무는동안 주로 도시에서 이어 가져온 일들을 진행하며 지냈는데 공간의 여백과 큰 책상이 작업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하다 장 본 것들로 간단히 키친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마주치면 늘 기분 좋은 미소로 안부 건네주던 솔트팀과 간간히 즐거운 대화도 나누고요. 답답하면 옥상 테라스에서 바람도 쐬고 그리고 매일 애착 대형 텀블러에 물 가득 담아 작업하며 하루종일 차와 커피 물 뭘 많이 마신 것 같네요. 와중에 부산에 발표하러 다녀오기도하고 임흥순 작가님과 제주에서 협업 촬영도 하고 그러다보니 순식간에 2주가 지나가버렸어요. 아쉬웠지만 그래도 바다 가득 펼쳐지는 숙소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5. 바다 가까이에서 지내본 적이 있나요? 있다면 제주의 바다는 어땠나요?
현재 부산역 근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동네에 살고 있어요. 정박하거나 운행하는 배가 주로 보이는 항구와 해양도시 이미지가 큰데 반해 제주에 오면 화산섬의 흔적과 더불어 야생의 바다 그 자체를 더 느낄 수 있어 또 다른 매력으로 좋습니다.
6. 방문했던 장소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어디였나요? 그 이유는요?
레이오버 기간 중 제주-베트남 관련 다큐멘터리에 작가로 출연하게 되어 작업과 촬영을 하며 제주 4.3 역사의 현장인 빌레못굴이라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끔찍하고도 아픈 이야기를 듣고 굴 앞에 서 있는데 깊숙한 굴 안으로부터 아주 차갑고 냉한 바람이 불어왔어요. 그순간 따뜻한 차 한잔 올려드리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져 촬영을 멈추고 야생초를 채집하여 차를 제다한후 다시 방문하여 차 한잔 올려드렸던 순간이 남습니다. 그리고 촬영 중 흰색 종이 갓 모자 같은 것이 멀리서 저희 쪽을 향해 바라보듯 서있는 걸 발견하고는 다들 깜짝 놀랐던 것도요.
7. 레이오버 기간동안 매일 차를 즐기셨다고 들었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차는 무엇인가요?
피디님 할머님 댁이자 애월의 고 강상희 할머님 정원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을 채집 제다하여 이번 촬영에서 제주 4.3 유가족분들과 나누어 마셨던 차가 기억에 남네요. 솔트 친구들과 같이 마셨던 차도요. 결국 차는 맛도 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시간과 이야기인 것 같아요. 숙소에서는 매일 대만 고산 우롱차, 호지차, 목련차 등 그때 그때 끌리는 차들을 마셨습니다.
8. 레이오버 기간동안 가장 예상치 못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4월 3일, 처음 방문하는 평화공원으로 이동 중 버스터미널에서 역시 이곳을 방문하고자 하시는 할머님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계속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고 계시길래 제가 할머님께 같이 이동하자고 말씀드리고 함께 동행하게 되었어요. 누가 계시냐니 열일곱에 떠난 우리 오빠 라고 말씀하셨어요. 구십 넘은 연세에 몸도 불편하시고 모셔져 있는 장소도 기억도 헷갈려 하셔서 행사 참석보다 할머님 오라버니를 꼭 찾아드리고 싶었어요. 같은 이름의 행방불명자비를 한참을 헤매다 가까스로 다행히 찾았습니다. 크게 안도하며 할머님과 같이 인사드리고 계속 주시는 제주귤과 음식들 먹고 이야기 들어드리고 또 같이 터미널로 돌아왔어요. 포옹하며 헤어질 때 할머니가 연신 고맙다 죽을 때까지 안 잊는다 이걸 어찌 갚나 제주어로 말씀하셨는데 저는 할머니 오라버니가 저를 할머니에게 데려다 준 거라고 동행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말씀드렸어요. 오히려 예상치 못한 이 여정이 선물 같았습니다. 이 연결로 해마다 이제 저는 이날 할머니를 생각하며 오라버님을 기릴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 제작사를 운영하는 직업이 직업인지라 전화번호 받고 그럴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 싫었달까요. 그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그리고 며칠 뒤 연관된 지원사업 선정 소식을 들었어요. 결론적이지만 작업 잘하라는 뜻이구나 싶었습니다.
9. 평소에 미루고 있는 일이 있나요? 몇 년 동안 생각만 하고 있는…
생각만 해오던 개인적인 작업과 공부를 올해 드디어 구체화하며 시작하고 있어요! 사무실과 거주지 정비, 이사가 남았습니다.. 아, 그리고 구상하고 있는 책을 만드는 것도요.
10. 레이오버 기간 동안 ‘경유지’에 대한 기존 정의/생각에 달라진 점이 있나요?
단순히 어떤 쉼이 아니라 그 시간을 경유지라고 명명하니 멈춘 듯한 단어에서 오히려 현재가 더 또렷해지는 기분이였어요.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방향을 응시하며 키를 잡는 느낌이랄까요. 종종 이런 시간을 의식적으로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한 번 좋은 시간을 마련해주신 솔트팀에게 감사합니다!
11.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되시나요?
현재 거주하고 있는 부산의 물길을 동아시아와 유라시아의 거점 경유지로 바라보며 역사와 생태 문화적 관점으로 연결하는 다원예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요. 동시에 교토, 대만 리서치와 제작사 소속 감독님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시 연계 티세레모니, 제주-베트남 다큐멘터리 출연 등을 진행하며 남은 한해를 바쁘게 보낼 것 같아요. 끝나면 다음 여정을 위한 경유지로 솔트에 가서 잠시 쉬고 싶네요!
*이 인터뷰는 레이오버 종료 1개월 후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