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글


1. 레이오버에 오기 직전 3개월의 생활이 궁금해요.

조금 거슬러 올라가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 지난해에 건강이 안 좋아 수술을 했어요. 그래서 올 상반기는 밀린 일들을 처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출판사 돛과닻에서 신간 두 권을 내고, 번역 일도 하고, 전주국제영화제 예심으로 영화를 400편가량 보느라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어요. 5월부터는 단칸공방이라는 손바느질 소품숍 런칭 준비를 했고요. 그래서 초여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짬을 내어 친구들과 캠핑도 가고, 좋아하는 덕유산도 가고, 바쁜 와중에도 저의 몸과 마음에 조금씩 보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솔트 레이오버는 이 여름의 끄트머리에 숨을 깊이 고를 수 있는 완벽한 휴식 시간이었어요.

2. 레이오버 일정은 어떤 식으로 조율하고 결정하셨나요?

솔트는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레지던시의 박희정 님 소개로 알게 되었는데, 6월까지는 제가 여러 일정으로 바빴고, 7월은 솔트에서 자체 프로그램이 잡혀 있었고, 9월에는 개강해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니 자연스레 8월로 일정을 잡게 되었지요. 사실 저는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계절이라면 언제든 좋다고 생각했답니다.

3. 이전에 제주에 온 적 있는지, 있다면 무얼 하셨나요?

제주는 여행으로 꾸준히 들리던 곳이에요. 바다도, 숲도, 오름도 즐겨 찾곤 합니다. 캠핑을 좋아해서 협재와 우도의 비양도, 한라산 자락에서 야영을 하기도 했고요. 2018년에는 여행이 아니라 조금 길게 머무르며 살아볼 기회가 있었어요. 제주시의 예술공간 이아 레지던시에서 반년, 함덕에서 집을 구해 한 달, 이후 우도에 들어가서 일 년간 살았습니다. 우도에서는 주위에 끝없이 펼쳐진 땅콩밭과 돌담만 가득해 외롭기도 했지만, 혼자만의 시간에 몰두하며 작업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우도에서 돌 리서치를 하며 『사로잡힌 돌』이라는 책의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2019년에 개인전이 잡혀 서울과 제주를 오가다 결국 제주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돌아왔지만, 그 시간은 제게 몇 년 치의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4. 레이오버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서의 첫 번째 일정은 무엇인가요?

퇴실하던 날 새벽 일찍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전북 군산으로 넘어갔습니다. 레이오버 퇴실일과 돛과닻이 참여하는 군산북페어가 겹쳐 있었거든요. 제주에서 2주간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다 북페어의 높은 인구밀도와 시끌벅적한 소음 속에 있자니, 솔트에서 지낸 시간이 꿈 같기도 하고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틀간의 군산 일정을 끝내고 서울 집으로 돌아와 수영복과 묵은 빨래들을 빠는 순간, 그제야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5. 레이오버에서 잠자리는 어땠나요?

레이오버 룸의 침대는 바닥이 아닌 천장에 가깝게 설치되어 있잖아요. 처음에는 사다리를 타고 허공에 떠 있는 침대로 향하는 일이 어색하고 발을 헛디딜까 봐 무섭기도 했는데, 금방 적응했어요. 그리고 침구가 도톰하고 폭신해서 편안했습니다. 이따금 조금 쓸쓸한 기운이 드는 밤에는 아이패드에 좋아하는 팀의 야구 경기를 낮은 볼륨으로 틀어놓고 잤어요.

6. 레이오버에서의 아침 시간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저는 늦잠꾸러기인데 여행지에서 늘 그렇듯 아침마다 저도 모르게 일찍 눈이 떠졌어요. 오늘은 날씨가 어떠려나 창밖으로 하늘의 기색을 살펴보고, 스마트폰에 깔아둔 웹캠으로 서울 집에 있는 고양이들의 안부를 살폈습니다. 친구가 종종 가서 돌봐주고 있었지만 늘 미안하고 걱정이 되었어요. 고양이 털 하나 없는 쾌적한 솔트 침대에서 아침 기지개를 켤 때, 새삼 제가 일상으로부터 멀리 떠나와 있음을 느끼기도 했지요.

7. 지내는 동안 바다에 얼마나 자주 가셨나요?

처음 며칠간은 매일 오전 바다에 갔어요. 한 차례 신나게 수영하고는 햇볕에 몸을 구우면서 책을 읽다가, 오후에는 솔트로 돌아와서 책상에 앉아 고요함 속에서 글을 쓰거나 편집을 하거나 바느질을 했습니다. 최대한 단순한 루틴으로 생활하는 것이 꽤 기분 좋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바다에 못 가기도 했지만, 해만 나면 솔트 지척에 위치한 고내포구에 가거나 버스를 타고 곽지, 협재, 월령포구, 조금 멀리 떨어진 이호테우 해변까지 가기도 했어요. 고내포구는 수심이 4미터가 넘고 안전요원도 따로 없다 보니, 튜브 없이 수영하기엔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경찰 아저씨가 주의를 주며 돌아다니시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해수욕장과는 달리 마을 옆구리에 딱 붙어 있는 포구 나름의 매력이 있어, 그곳에서 빈둥거리며 보내는 시간도 좋았습니다.

8. 평소에 미루고 있는 일이 있나요? 몇 년 동안 생각만 하고 있는...

지리산이나 설악산 종주, 혹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처럼, 긴 시간과 튼튼한 체력이 필요한 여행을 더 나이 들기 전에 하고 싶다고 몇 년 동안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십 년도 넘은 것 같아요. 이러다 할머니 되는 거 금방일 텐데요! 우선은 기초체력부터 쌓아야겠지요. 사실 멀리 갈 것 없이 제주에도 아직 못 밟아본 아름다운 길이 수없이 펼쳐져 있는데, 언젠가 제주에서 또 길게 머무를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길고 느린 도보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겠어요.

9. 레이오버 기간동안 무엇을 가장 자주 먹었나요?

애월 하나로마트에서 햇반을 사다 놓고 솔트 부엌에서 간단한 덮밥을 해 먹거나, 콘플레이크, 빵과 과일 등 주로 간단한 식사를 했어요. 솔트에서 멀지 않은 애월읍 식당 중에서는 채식 메뉴가 많은 ‘숨비다’에 여러 번 갔어요. 여름 한정 디저트인 수박 샤베트가 얼마나 맛있던지, 지금도 그 사각거리는 달콤함이 혀끝에 느껴지는 듯합니다.

10. 이번 제주가 지난 제주 경험들과 달랐던 점이 있나요?

몇 해 전 제주에서 살 때는 서울에서 고양이 셋을 다 데리고 갔어요. 비행기 타고 트럭 타고 배 타고, 녀석들이 고생을 많이 했지요. 그때는 가족인 고양이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제주에 있는 동안에도 집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혼자 여행으로 훌쩍 제주에 갔을 때는 철저히 여행자이자 이방인으로서 존재했지요. 그런데 이번 레이오버는 좀 독특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거주자도 이방인도 아닌, 완전한 여행자도 완전한 손님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저의 몸과 마음을 천천히 어디론가 부드럽게 이동시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당도한 가을, 저는 또 한동안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편안한 레이오버를 위해 신경 써 주시고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배려해 주신 솔트의 모든 스탭분들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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